[스크랩] 백제의 왕궁터....그 쓸쓸한 기억이 드러나고 있다..
-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오층석탑. 국보 289호..
(대학다니던 시절 289번 버스를 타고 다닌 기억이 나네..엉뚱하지만..)
백제탑 양식을 계승한 고려탑이라는 학설이 있었고,
또 최근엔 조사단이 석탑 이전에 목탑이 있었음을 증명하기도 해서..
역시 '패자loser'일 수 밖에 없는 백제의 역사는 오리무중이다..
1989년 이지역에 대대적인 발굴이 들어가기 전엔,
이 석탑 하나만 남아있고, 잡초만 무성하던 곳에다 군데 군데 사람들의 논밭이 있었다 한다.
그래서..그저 큰 절터인가 보다 했는데, 막상 파보니까...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
그리고 그 전엔 이 자리가 왕궁이었음을 증명하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백제를 멸망케 한 신라는, 백제의 왕궁터에 절을 조성한 것이다..
마치, 제국 일본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물론 사찰로 사용한 것은 동물원으로 만든 것 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신장 개업'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신라도 망하고, 고려도 망하고..
석탑의 흔적과 잡초만 무성하던 왕궁리...
이 터에서 농사도 짓고, 집도 짓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던 셈..
2008년 까지 발굴해야 할 만큼 방대한 터이다.
물론 더 걸릴지도 모르는 정방형의 터..
동생 부부가 사는 익산에 처음 들렀을 때, 논밭에 어지럽게 박힌 전봇대들,
그리고 도로는 좁은데, 신도시에 아파트는 무지막지하게 들어서고..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 드는 소도시였다.
그런데, 다시 둘러보니, 미륵사지터도 그렇고, 왕궁리도 그렇고 조금만 둘러봐도
익산은 '풍수'가 대단한 자리라는 직감같은게 느껴진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백제가 승리했으면, 지금쯤 '익산특별시'가 됐을지도..........
- 주춧돌 등이 놓였던 자리(사진의 하얀 선)는 무게때문에 흙 입자가 치밀하여 구분된다고
한다....
돌이 깔린 부분은 수로이다....
또, 왕궁리터에선 화장실 자리도 발견됐는데, 이른바 '화장실고고학'의 중요 지표인
회충의 알은 물론, '똥막대기'도 발견되었다..
똥막대기는 1960년대까지도 실제로 존재했었다..
(선불교에서의 중요한 '화두'중에 '똥막대기'와 관련한 것도 있다)
아궁이같기도...혹은 마루같기도 한..저 곳은 무엇일까..
세월이, 인간의 삶이 덧없다..
금 쪼가리..
유리 세공....
뚝배기...토기다...
저 그릇에도, 한 때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거리는 국물이 담겼고,
누군가의 주린 배를, 혹은 숙취에 시달리는 속을 달래는..
그런 숟가락이 들락거렸을 것이다...
전문 학예사가 아닌데도, 매우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아주머니..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깜짝 놀란다(미안하게시리)...
그냥 지나쳐가는데, 멀리서 달려와 임시유물전시관으로 우리를 이끈 장본인..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발굴조사단과 '학술적' 관계가 없을 이 아주머니때문에..
조사단의 성실성에도 신뢰가 간다..